ssil 이야기/말씀묵상

[20241124] 교육 세미나 "나는 누구인가?"

ssil 2024. 11. 28. 14:43

4부 예배 /  이한영 교수님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창세기 5:1~2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인간에게는 무언가를 알아가려고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을 얼마만큼 알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얼마만큼 알수 있을까?
  나는 동시에 주격과 목적격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강아지는 강아지 만큼만 세상을 압니다.

사람도 세상을 사람만큼만 압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전혀 스스로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나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I know me." 나는 나를 안다.

첫 번째 '나'는 주격

두 번째 '나'는 목적격입니다.

내가 동시에 주격이 되고 목적격이 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내 밖에 있는 것은 많이 알지만,

내가 나를 알 수 있는 존재가 세상에 없습니다.

 

왜 나는 나를 알수 없을까?

 

  자율적 존재  Autonomous Being
  관계적 존재 Relational Being

  나는 누구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인간이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는 자율적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모든것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극적인 개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자율적 존재라면 내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알려준 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바다 백상어

size : 7~8 m

weight : 1.6 ton

 

그런데, 아기 백상어를 어항에 넣고 키우면,

40cm밖에 안 자라고 무게도 9 kg 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성어가 된 백상어를 다시 바다에 넣어줘도 안 자랍니다.

어항에서 자란 백상어는 자신이 붕어인 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강요한 어항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곳을 타락하 세상이라고 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씀 속에 내가 누구인가 질문에 대한 답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생물학적  →  체중, 신장, 성별, 외모, 인종 등
 사회, 경제적  →  직위, 재력, 학력, 인연 등

 역사문화적  →  가문, 지역, 카스트제도 등

나는 나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알게 하셨지만 우리 스스로는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똑똑한 것 같지만,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삽니다.

 

  • 참꼬치

size : 1.3m

weight : 23kg

먹성이 좋은 물고기입니다.

 

[참꼬치 증후군]

참꼬치와 잡어 사이에 유리벽을 세워두면 참꼬치가 잡어를 먹기 위해 가다가 유리벽에 머리를 박습니다. 3일 정도 계속 시도를 합니다.

그 후 유리벽을 치우면 참꼬치는 잡어들이 바로 앞에 왔다 갔다 해도 못 잡아먹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 살면서 어려서부터 부딪히는 게 많습니다.

트라우마가 있으면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역기능적으로 형성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꼬치와 같은 정체성을 갖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앎은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자아에 대해 3가지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갑니다.
역기능적인 정체성입니다.

 

  • 자기애성, 우월의식

무식하니까 하나님을 믿지

날조된 자아를 만들어감

과대성 유지하고, 인정받기 위한 정체성

작은 비판에도 쉽게 넘어짐

비난에 피해의식으로 괴로워함

 

  • 낮은 자존감, 열등의식

지나친 자신의 방어와 타인에 대한 비평

겁이 많고, 때로는 극도의 겸손으로 나타남

늘 비교하고 외모 수치를 많이 따짐

과거의 상처를 회상하며 살아감

 

→ 자기애성, 우월의식, 낮은 자존감, 열등의식의 종착점은 공허함, 혼돈, 어두움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채우기 위한 길이 중독입니다.

 

  • 중독에 의한 정체성

결핍증에 의한 중독

게임, 관계, 술, 포르노, 권력, 사이비 종교 등

마약(가장 무서운 중독)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나를 알 수 없는 존재로 처음부터 창조되었습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나를 아는 것이다"  (어거스틴)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나는 나를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

 

그러면 나는 왜 나를 알 수 없을까요?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욥기25:6)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 앞에 겸손을 가르쳐줍니다.

악은 선하신 하나님과의 거리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자아를 발견하는 것부터 참된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대속하심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로 원래의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나를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고 부여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고유한 속성 2가지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속성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속성

 

우리는 하나님의 고유한 속성인 진리와 생명에 대해 침범해서는 안됩니다.

 

 

  • 영성 Spirituality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나는 하나님의 영성을 나눈 존재입니다.

사람은 그냥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요 거룩한 성령의 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영적인 존재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것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

 

인간은 본능적으로 예배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 섹스, 머니, 파워를 예배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 합리성

하나님은 우리를 합리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세기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조가 세밀하고 합리적입니다.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을 판단하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 비합리적인 세상에 빠져있습니다.

 

- 비합리적인 미신주의

: 한 달 내내 놀고 시험 전날 내일 A 맞게 해 달라는 것, A를 맞으면 그건 저주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 합리주의적 미신주의 

: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에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님도 성경도 합리적으로 해채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부도 해야 하고, 인생도 계획해야 하며,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미신론에 빠뜨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영상과 합리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 도덕성
(창세기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레위기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오늘날 극적인 개인주의에 빠져 도덕성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좋았다'는  관계적인 '토브' 즉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토브입니다.

 

행함이 아닌 은혜만 강조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삶이 자아가 되고, 거룩한 것이 행복입니다.

 

기독교가 욕을 먹는 이유는

크리스천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음에도, 거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첫째도 거룩이요! 둘째도 거룩이요! 셋째도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그릇이 있지만, 깨끗한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그릇을 만들까에 교육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나는 나를 깨끗한 그릇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 창의성
(창세기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아담도 창의성으로 동물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예수를 받으면 창의성이 생깁니다. 용감해집니다. 자유함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