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에 무척 다니고 싶었습니다. 학원 선생님께 칭찬도 많이 들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잠시 다닐 수는 있었지만, 사정상 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집에 피아노도 없어서 멜로디온으로 연습하고, 교회에 가면 풍금과 피아노로 연습하면서 독학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름 잘 치지는 못하지만, 코드 반주 정도와 어렵지 않은 찬송가 반주 정도는 합니다.
누구보다도 저는 내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일찍 피아노를 가르치면 어느 아이나 단계별로 진도가 나가서 체르니 40번을 다 치고 작품집까지 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필이 어린시절 교회에서 메인 찬양팀의 세컨드 신디 반주에서부터 메인 반주자로 금요일 찬양예배를 비롯해 주일 오후 찬양예배, 새벽기도 찬양팀 반주까지 그리고 유초등부 예배 반주까지 활동을 했습니다.
이때 연습할 때도 예배할 때도 늘 필이는 저와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함께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음악이 있는 곳에 우리 아이가 노출되길 원했던 마음도 컸기에 일부러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에 무척 익숙해하고 집에서도 혼자 말도 안 되는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등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필이 6살 때 방문하여 레슨해 주는 "피아노 어트벤처"로 필이에게 첫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6살 피아노 어드벤처 방문레슨
피아노 레슨은 무척 즐거워 했습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필이는 진도를 거부하고, 자신이 들어서 좋았던 노래를 치게 해 달라고, 그걸 치겠다고, 선생님을 무척 애 먹였던 것 같습니다.
1년여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레슨을 못하겠다고 좋게 돌려서 좀더 젊은 선생님이랑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그만두셨습니다.
뜻밖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찬양팀을 하면서 알게 된 교회의 피아노 전공 청년이 방문레슨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번에는 그 청년에게 방문레슨을 부탁했습니다.
7살 교회 음악전공 청년에게 방문레슨
이 청년은 너무 예쁘고 친절하고 필이를 예뻐해 주면서 레슨을 필이가 좋아하게 잘해 주었습니다.
여전히 필이는 본인이 연주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 했기에 진도도 나가고 필이가 하고 싶은 것도 하게 해 주려고 아마도 청년선생님이 힘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지역을 바꿔서 이사를 가게되어서 예쁘고 친절한 청년 선생님과 작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니까 학교 앞 피아노 학원에 보내봤습니다.
1학년 초등학교앞 피아노 학원
학원에 재미있게 다니기는 했습니다.
원장선생님 말씀으로는 필이가 귀가 무척 예민하다고, 꼭 피아노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악기를 계속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을 잘 기억했습니다. 영화나 영상에서 스쳐 지나듯 흘러간 음악을 다른 곳에서 들으면 어디에 나왔던 음악이라고 콕 집어서 잘 기억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귀가 예민하다는 말씀에 공감을 했습니다.
그런데 진도를 나가야 하는 피아노 학원 스타일이 필이에게는 힘들었는지 다니지 않겠다고 여러 번 요청을 해서 피아노는 그냥 접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다 다니는 교회에 피아노와 성악을 전공하고, 레슨을 하시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노래나 피아노 레슨을 해 주시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필이도 피아노와 노래를 주일 오후에 교회에서 혹은 집에 오셔서 레슨을 받기로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돌어보니 제가 피아노를 꼭 가르쳐야겠다는 집념이 무척 강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 선생님에게 다시 레슨 시작
선생님이 아들 학부모이시기도 하셔서 필이를 잘 이해하시고 필이에게 맞게 재미있게 레슨을 해 주셨습니다. 아이가 싫어하지 않고 잘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느낀 것이 있습니다.
필이에게 연주의 재능은 좀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쯤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였던 것 같습니다. 진도에 따라 정석대로 피아노를 가르치는 건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이사를 갔습니다. 이번에는 양평 시골학교입니다.
이참에 피아노는 그만두자라고 생각했고, 양평으로 가서는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필이가 6학년쯤 되었을 때 피아노를 배우는 반 친구들이 많고, 그 친구들이 학교에서 이런저런 연주를 하며 피아노를 갖고 노는 게 재미있어 보였는지, 피아노를 자기도 배우고 싶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노래나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했습니다.
학교 방과 후와 동네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배우며 한 곡 한 곡 연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침 양평에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사촌 올케가 피아노학원을 하고 있었기에 올케가 운영하는 학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초등 6학년 외숙모가 운영하는 피아노 학원
이미 진도대로 가르치는 건 그만하기로 했기에, 필이는 기본을 위한 교본과 함께 필이가 연주하고 싶은 노래를 한 곡씩 마스터해 가는 방식으로 레슨을 받기로 했습니다.
확실히 자기가 연주하고 싶은 노래를 배우다 보니 즐겁게 다니고 집에서 연습도 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 가을에 우리가 다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피아노 학원을 그만 다니게 되었는데, 서울에 와서도 계속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서울로 이사를 오며 커다란 업라이트 피아노를 없애고, 커즈와일 디지털 피아노를 들여놓고, 필이는 계속 피아노 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서울 집 근처 피아노 학원을 알아봤습니다.
중1 동네 피아노 학원
동네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피아노 학원이었는데, 드물게 젊은 남자 원장선생님이셨습니다. 실용음악을 전공했는지, 작곡도 하시고, 필이가 배우고 싶은 노래를 얘기하면 필이 수준에 맞게 악보를 만들어서 레슨 해 주셨습니다. 이 학원에 정말 재미있게 다녔습니다.
한 곡 한 곡 정복 해 가면서,
이때부터는 스스로 집에서 연습도 많이 하면서 즐겁게 다녔습니다.
중학생 나이 끝나갈 때쯤 한스가 다른 공부들이 많아지니까 이제 피아노 레슨은 그만 받자고 해서, 나는 더 배우게 하고 싶었지만, 당시는 내가 회사일로 너무 바빴고, 필이랑 아빠랑 시간을 보내는 때였기에 피아노 레슨은 중요한 시간은 아니었어서 레슨을 그만두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피아노 레슨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공부하다 머리 식히는 방법이 피아노 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유튜브에서 연주하는 영상을 보고 그 사람의 악보를 구매해서 본인이 연습하고 외우고 열심히 합니다.
마치 이제는 피아노가 쉼을 주는 취미생활이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피아노 교육의 방법이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여러 과정과 우여곡절 끝에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아이로 성장하였습니다.
연주에 소질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음악을 좋아하는 필이가 된 것이 너무 좋습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 것에 대해 엄마의 생각으로 그냥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에 내가 피아노는 진도대로 힘들어도 연습하며 배워야 하는 거라고 우기면서 끌고 나갔다면, 필이는 피아노를 즐기며 연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학원을 그만둔 후로 쳐다도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필이의 요구사항, 원하는 방향, 스타일, 아이의 성격, 재능 등을 생각해서 나름 융통성 있게 방향을 잡아갔던 것이 그래도 필이에게 피아노와 음악을 갖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피아노를 치며 행복해하는, 어떨 때는 힘든 마음을 피아노를 치며 푸는 것 같은 아들의 모습을 볼 때, 연주가 뛰어나지 않아도, 안심이 되고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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