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il 이야기/말씀묵상

[20240324] 주일설교

ssil 2024. 3. 25. 20:15

[종려주일 / 오대식목사님]

재앙의 두 얼굴
(출애굽기 8:20~24)
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1. 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22. 그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23.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24. 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가 바로의 궁과 그의 신하의 집과 애굽 온 땅에 이르니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

 

10가지 재앙 : 피, 개구리, 이, 파리, 가축 돌림병, 악성종기, 우박, 메뚜기, 암흑, 장자의 죽음

출애굽기에 나오는 10가지 재앙은 겉으로 보기에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이집트의 신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2번째 재앙읜 개구리 재앙은

개구리 → 헤케트(Heqet) 신으로 다산을 상징합니다.

이집트의 대표 신 "태양"신은 이름이 세 '라'신이라는 이름 이외에 어전에는 '케프리'신, 저녁에는 '이룸'신으로 불립니다.

그중 오전에 불리는 '케프리'는 풍뎅이, 쇠똥구리를 말합니다. 

케프리 → (풍뎅이)쇠똥구리,쇠파리 → 죽음과 부활을 관장하는 신

번역에 따라 쇠파리라고 하는게 가장 가까울 듯합니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악의 세력의 대표적인 '바알세불'입니다.  책 '파리대왕'에서 파리대왕은 바알세불을 말합니다.

(출애굽기 8:24) 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가 바로의 궁과 그의 신하의 집과 애굽 온 땅에 이르니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

사람이 만드는 우상은 결국 황폐해 질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만든 신은 무엇입니까? "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따라가면 황폐해 질 뿐입니다.

이 출애굽의 10가지 재앙은 이집트 인에게는 재앙이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상도 출애굽을 하려 할 때 어려움이 많이 있었지만, 큰 그림으로 볼 때 그것은 구원으로 가는 길, 즉 은혜였습니다.

(출애굽기 12: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재앙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는 재앙이나 우리에게는 구원입니다.

(이사야 53:3~5)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의 일상속에서도 우리는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시원하다 말하고, 뜨거운 온탕에 들어가서 시원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난(재앙)이 왔을 때 시원해짐을 왜 모르는 걸까요?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혹, 재앙(고난) 중에 있습니까? 재앙(고난)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입니다.

"하나님과 고통은 서로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필연적으로 일치하는 관계임을 일찍 배울수록 유익합니다."
책 <정말 기독교는 비겁할까 / 본회퍼>에서

기독교는 룰루랄라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종교가 아닙니다. 성경을 이해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진리입니다.

본회퍼 목사님의 말씀처럼 하나님과 고통은 필연적으로 일치하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진짜 손해 보는 종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랍답게 사는 것, 알고 보면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 합니다. 

앞서 주일학교 예배에서도 두 랩돈을 드린 과부이야기를 통해, 과부는 두 랩돈이지만 전부를 드렸고, 다른 사람들은 넉넉한 중에 아깝지 않을 만큼만 드렸다는 부분에서 나도 그러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찔림이 있었습니다.

아깝다 느끼지 않으며 나누는 것에 진짜 마음이 있을까? 그저 동정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있었기에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

고난 중에 거하면 더욱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므로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

그러므로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이곳에서 잘 먹고 잘 살려는 목표는 일찌감치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내 것을 주기에 조금 더 아까워도, 나눠야 하고,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사람다움으로 선을 행해야 하고, 고난에 처하더라도 예수님처럼 살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최고인 세상에 살면서 돈을 돌 보듯 사는 건 어럽습니다. 그러나 돈이 내 삶의 주인이 되게 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돈의 주인이 되어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